어제는 부산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고 돌아왔다. 서울역을 나오자 눈엔 서대문 경찰서가 들어왔다. 왠지 낯이 익어 보였다. 물론 난 저 경찰서에 가 본 일이 없다. 단 몇 개월전 수사관들의 차를 타고 방배에서 용산을 거쳐 도심으로 들어설 때 이곳을 보며 생각했다. 아 여기로 날 데려가는 건가. 아니었다.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서울지방경찰청에 도착했다.
차를 타고 많은 관청을 지나치면서 순간적으로 이 건물들에 있을 친구, 동창, 지인 뭐라고 부를수도 있고 없기도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내가 알량해보였다. 이들은 다 햇병아리다.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. 차라리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는게 낫다.
난 특수수사과에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되었다. 참고인이란 굉장히 미묘한 신분이라는걸 그때 알았다. 혐의자가 아닌 이상 수사관들은 나에게 상황을 설명해줄 의무가 없다는 태도였다. 큰 문제는 내가 죄가 없다는 것이다. 더 큰 문제는 혐의자도 죄가 없다는 것이며 그걸 나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.
이들은 많은 개인정보들을 협조라는 명칭하에 확인하고 요구해왔다.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'변호사를 부를께요' 였다.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내가 왜 이런 사소한 개인정보에 대한 요구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으니. 문제는 내가 참고인이라는 것이다. 혐의가 없다. 그런데 내가 비협조적일수록 옆 방에서 취조 받고 있을 회사 동료가 의심받을 것이다. 난 내키지 않는 모양새로 개인정보들을 제공할 수 밖에 없었다. 어차피 이 사람들이 복잡하고 행정적인 절차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것들. 그럼에도 아무런 의혹도 없는 무가치한 (그들에겐) 것들.
난 그날 밤에 집으로 돌아왔고, 참고인에 불과했던 난 어떠한 피드백도 받지 못했다. 회사동료에 대한 의혹도 곧 없어졌다.
이 사건을 부모님께 말씀드린건 한 달쯤 전이었다. 그런데 알고보니 아버지도 작년 한해는 관과의 교류가 잦았다. 다른 점은 아버지의 건들은 지금도 진행중이며 의도하진 않았지만 잘못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들이다.
아버지의 케이스들은 아주 복잡했다. 두개 모두 각각 꽤 장황한 전후 스토리와 의사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것들이었다. 모두 형사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아버지는 '완벽한 회피' 를 하지 못할 경우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는 손해에 대해 걱정했다. 동원할 수 있는 연줄과 압력을 넣어야하는 적절한 타이밍, 압력의 대가와 부작용등에 대한 걱정은 굉장히 현실적인 피곤함을 가져다 주는것 같았다. 옛날을 그리워하시는지도 모르겠다.
그리고 나에게도 곧 잘 관을 조심하고 겁내라고 이야기한다. 관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개인을 폐가망신시킬 수 있다고. 이 전형적인 어른의 대사를 아버지는 조직이라는 보호막을 던진 지금에 와서야 시작하였다. 황혼기에 조금씩 가까워진다. 앞으로 몇 년. 삶의 - 적어도 돈의 - 가능성은 줄어든다. 가진것을 보호하기 위해 소심해진 아버지를 보았다.